<복수는 나의 것>, 복수의 이해와 완성 그리고 주인

복수는 나의 것 (2002)

감독: 박찬욱
배우: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전 착한 사람입니다. 성실한 근로자죠.

세상엔 두 가지 유괴가 있어. 나쁜 유괴, 착한 유괴.

너 착한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거 이해하지?

---

이로써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역순으로 해치웠다. <친절한 금자씨>를 본 지 15년 만이다.
장맛비가 새카맣게 내리던 날, 여름 휴가를 보낸 제천 에어비앤비에서 침대 만큼이나 큰 티비로.

복수 3부작중에 올드보이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 영화에 더 마음이 간다.
감독 특유의 재치와 B급 정서가 보다 선명하고, 이야기를 통해 던지려고 하는 질문이 가장 생생하고 눅진하달까.
복수의 동기와 동력, 본질과 성공은 무엇이며 주체와 객체는 누구인가.
성실함과 평범함, 이기와 대의, 선과 악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나.

영화적 완성도도 높다. 한 장면도 버릴 것 없이 꽉 차 있었다.
류가 청각장애인이어서 그런지 영화의 미니멀리즘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된다. 최소한의 대사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군더더기없이 전부 전달하는 연출이 인상깊었다.
여백을 통해 오히려 모든 씬을 정성껏 가득 채운 느낌이 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류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정의하고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좋았다.
냇가를 뛰노는 어린 시절의 류와 누나를 해거름 옥상에 기대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낀 그들의 현재로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
고통에 절규하는 누나의 비명을 쾌락의 신음으로 오해하는 옆집 청년들과, 무구하게 미소짓는 류.
장기를 떼이고 나체로 쓰러진 류와, 먼지뿐인 바닥을 구르는 장미.
딸의 부검에 흐느끼며 구겨지던 것과, 류 누나를 부검할 땐 영혼없이 텅 비어있는 게 극명히 대조되던 동진의 표정

동진이 류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강을 걸어 나갈때 강물에 번지는 검붉은 핏빛은 암녹색 화폭 위 붉은 수채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복수의 의식을 완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죽고 죽이는 복수의 게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 한 건 동진이 아니었다.
복수엔 이해도 성공도 주인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두 번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음울하고 잔인했지만, 숙제를 잘 마친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