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장거리 위로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Drive My Car,
ドライブ・マイ・カー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우코, 오카다 마사키, 키리시마 레이카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고 솔직하게 타협해야 해요.

바냐 삼촌, 우리 살아가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 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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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 자가용은 현대인의 심리적 요새다. 빨간 올드카를 모는 가후쿠, 그가 고이 봉인해 둔 상처 역시 그 차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 안에서 가후쿠는 오토가 녹음한 테이프의 여백을 제 목소리로 독백처럼 채운다. 그녀와 함께일 때도,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도.
영화는 짐짓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 준 것 같지만 가후쿠와 오토는 이렇다할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다.
둘이 주고받는 건 정사 후 몽롱하게 짓는 이야기의 복기이거나, 녹음된 테이프를 매개로 주고받는 대사일 뿐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 말을 주고받는 것은 대화의 기본이지만, 그것이 대화를 완성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의 상처는 제각기 곪아간다. 시야가 좁아지다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될 왼쪽 눈의 녹내장처럼.

2.
가후쿠에게는 차가, 미사키에게는 운전이라는 행위가 지나온 삶에서 의식처럼 간직해 둔 상처였다.
가후쿠는 운전석을 미사키에게 내어주고 끝내 조수석으로 넘어옴으로써, 미사키는 운전 실력에 대한 진심어린 가후쿠의 칭찬을 받음으로써 서로에게 자신의 상처를 차츰 내보이고 또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된다.
긴 터널과도 같은 상처의 처음, 그 아픈 밑바닥을 향해 묵묵히 주행하면서.
간신히 숨을 토해내듯 열린 컨버터블 창 위로 손을 내밀어 담배를 피우면서.

3.
연극 <바냐 삼촌>을 완성하는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침묵의 아우성까지 경청하는 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오디션부터 공연 당일까지의 과정으로 보여준다.

4.
소냐의 마지막 대사를 유나 수화 롱테이크로 다루는 장면과, 미사키가 언어가 다른 땅 한국에서 가후쿠의 차를 몰며 끝나는 장면에선 안도감이 들었다. 이들이 서로를 완전히 치유한 것 같아서.
흰 설원 위에서 빨간 올드카가 스르르 멈춰서며 온통 고요만이 사방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이 동승한 자동차와 침묵의 언어가 맞닿아 영화가 말하는 주제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5.
연극과 소설을 해체하고 조합해 빚어낸 영화의 호흡에 멀미가 날 것도 같았지만, 남의 상처난 인생을 따라 달리는 장거리 위로이니 그정도야 감수할 수밖에.
소설 원작과, 희곡 원작을 읽고 봤더라면 극본의 완성도를 더 직접 체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