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망울

새해 핑계가 완전히 끝난다. 

새해 첫날에는, 한국인에게는 설날이 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설날에는 3월부터 새학기니까 하는 마음으로 미루고 미뤄두었던 '새해'의 '시작'을 끝낼 때가 되었다.

팀장님이 주신 여성의날 꽃. 감동 그자체

한달 내내 이런저런 꽃들 덕분에 행복했다. 3월에 충실했노라고 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받아봤는지도 까마득하게 오랜만에 여성의날 기념 장미꽃을 받았다. 점심 먹고 휘적휘적 어디론가 사라지신 팀장님이 쇼핑백 한가득 여성 동료 수만큼의 장미꽃을 사들고 사내 카페에 나타나셨을 때 눈물날 정도로 가슴이 찡했다.

 

장미꽃이 오늘 왜 팔리는지 모르는 판교 꽃집 사장님에게 여성의날에 대한 브리핑 하고 오셨다고.

테크테크한 남초 동네 젠더감수성 아쉽다가도, 카페에서 시끌벅적 왁자지껄 장미꽃 나눠받는 우리 보고 누군가는 여성의날에 대해, 여성의날 장미에 대해 알게 됐으리라 생각하면 팀장님이 장미꽃 들고 등장하신 그 순간보다 좀 더 벅차오른다. 

 

판교역 안에 생긴 꽃집.

판교역 안에는 꽃집이 생겼다. 삭막하고 차갑던 공간이 싱그럽게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총천연색 꽃들이 사람들의 걸음을 더디게 하고, 끝내 멈춰서게하고, 꽃을 들고 나서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정서적 포만감이 차올랐다. 나 역시 행인에 불과하면서 말이다.

 

야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술 한잔 걸치고 들어가는 길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출근길 기분 전환을 위해 꽃을 고르는 이들을 상상하면 인간이라는 종이 무척 귀엽게 느껴진다. 꽃 한 송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귀엽게 살자! 결심!

 

파자마 파티 하러 온 친구가 데려온 프리지아를 잡다구니 신전에 모셨다.

과로가 피크를 찍을 무렵엔 아홉 살 때부터 친구였던 단짝이 파자마 파티를 왔다. 그가 러쉬아워의 서울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와준 것도 고마운데, 한참 지각을 하고 말았다. 식당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친구가 건네자 중식 냄새를 뚫고 훅 끼치던 프리지아향. 봄을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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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한 꽃봉오리가 절반이었던 꽃다발은 며칠이 지나니 시나브로 피어나 완연한 꽃송이가 됐다. 

K장녀 한탄을 밤새 늘어놓다가 목소리가 쭈굴거렸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했던 우리는 아직 피어나고 있을까. 얼마나 피었을까. 향기로울까. 빛깔이 고울까. 두런두런 생각해본다. 

 

활-짝 피었지롱

미세먼지가 없는 봄이 기억 나지 않아 슬프지만, 탁한 세상에서도 알록달록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힘을 내본다. 

2분기, 3분기, 4분기를 피워낼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