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전시 우여곡절: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찰나

알버트 왓슨 사진전까지의 긴 여로

뜻밖의 과로가 있던 3월 중순, 열 시 넘어 퇴근한 뒤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와 비몽사몽 근황톡을 했다.

주말에 전시나 보러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급히 이것저것 찾아보고는 그래 여기다 하고 전시 하나를 골랐다.

 

분명 떠들썩할 법도 한 유명 작가의 전시인데, 이상하리만치 최근 인스타 게시물도 갔다 왔다는 주변 사람들 후기도 보이지 않았을 때 어서 찾아봤어야 하는데... 

 

3월 19일 아침 택시를 타고 출발한 뒤에야 알게 됐다.

바보들의 대화 (유유상종)

찾아본 것이 작년 전시였다는 걸....

그걸 깨닫고 도착하기 전에 알아채서 다행이라고 정신승리 한 뒤에 다시 찾은 대안은 다음 주 오픈 전시였고...

택시 목적지를 두번 바꾼 끝에 간신히 한가람미술관에 도착했다 😅

(한가람 미술관 두번 가고도 남을 시간이 걸림..)

 

생존 작가 전시장엔 이렇게 벽면에 사인까지!

그렇게 보게 된 게 알버트 왓슨 사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22년 12월 8일부터 2023년 3월 30일까지 한 전시다. 

 

'이 사진'중 하나인 히치콕 사진에 또 사인!

같이 매거진 사진 골라드려야 할 것 같은 기분 들게 했던 형태의 전시. 루즈하지 않고 좋았음

알고 보니 어랏 이 사진도 '이 사람'이 찍은 거였네!

의 '이 사람'을 맡고 계신 분 중 한 분이었다. 

'이 사진'중 또 하나. 소년의 안광이 영혼을 꿰뚫는것 같았다. 어린 신 같기도 한 느낌

패션 사진, 매거진 사진을 많이 찍었던 사진가인 만큼 인물을 담는 시선과 온도가 흥미로웠다. 

좋은 포토그래퍼는 같은 피사체에게서 다른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것만 같다.

애정이 담긴 인물사진에서 남다른 느낌이 드는 건, 애정이 포토그래퍼의 능력치만큼의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이겠지.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 222

수십년이 지났는데 묘하게 힙하다

빛을 사용하는 방법도 인상깊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던 시절이 머쓱할 만큼, 촬영과 인화에 이르는 과정 하나하나마다 재능이 스며들고 드러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싶었다. 

 

아름답고 강렬했음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회화적인 작품들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찍고 만들어낸 것인지 한참을 서성이며 요리조리 뜯어보며 '신기하다'를 앵무새처럼 연발했다.

 

무용하는 인체를 찍은 두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내 멋대로 크롭한 거지만, 소녀와 곰돌이가 마음에 쏙 들었음

특히 무용가 세르게이 플루닌 사진은, 작업하는 과정이 담긴 비디오클립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스탭과 모델에게 디렉션을 주는 과정, 강조하고 더하고 빼는 과정을 클립을 통해 접하고 나니 최종 인화된 사진이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누가 나의 본질과 업과 재능을 총체적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내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예술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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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소진하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MMCA)

3월 마지막주 어떤 평일에는, 중순의 과로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남은 22년 연차를 소진할 수 있었다(?)

대단하게 할 일은 없고, 애매한 거리의 과천국현을 드디어 한번 다녀와보자 싶었다. 

택시타면 20분, 대중교통 1시간 걸리는 마법 같은 곳. (연내 기필코 운전하리라)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2022.9.21-2023.5.14

이건희전이 또 있다. 또 봤다.

 

샤갈, 달리, 피사로, 모네, 고갱, 르누아르, 미로의 회화 작품 7점과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언제 봐도 너무 좋으니까

호안 미로, <회화>

넓지 않은 원형전시실에 도자 위주로 배치되어 있어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피카소의 끊임없는 창작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봐도 봐도 끝없이 처음 보는 작품이 등장하는 것만 같다.

양과 질을 전부 챙긴 예술가.... 리스펙트.

뭔가 기여웡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2022.9.15-2023.2.26

6 전시실에서는 백남준 <다다익선>의 복원과 재가동을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다다익선 off

사실 과천 와보고 싶었던 건 재정비한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 돌아가는 거 보고 싶어서인 부분도 상당했다.

얼렁뚱땅 욕구는 위험한 것이다.

<다다익선>은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만 전원이 켜진다. 

나는 수요일 오후에 갔음...

돔 천장에 새겨진 문구가 가슴벅차다고 어린이 시절에도 생각했던 것 같다.

찡하다

회화도, 조각도, 사진조차도 고정되어있는데 백남준의 영상예술은 어떤 측면에서는 정박되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변화에 대한 작가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미술은 무엇도 영원하지 못해 붙잡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속성을 표현하는 모순된 예술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마음에 들었던 찰나. 지구에 귀 기울이고 싶었음

 

전시는 아니지만 도서관 맛집!

전시보다도 과천관은 도서관 때문에 올 만 하겠다.

각종 미술서적이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최신 인테리어 가운데 잘 정리되어 있는 곳.

노트북 사용도 가능하고 (콘센트 있음), 몇 시간이고 틀어박혀 있기 좋을 것 같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미술 에세이 한 권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지만. 

미술도서관 서가

 

 

 

 

삼월은 여유로우면서도 여유롭지 못한 한 달이었다. 

그중 '여유' 부분에 해당하는 이틀 치 기억을 얼기설기 남겨두었다.

 

지나가고 옅어짐으로서 어쩌면 더 아름다워질 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