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올해의 OO

길 잃은 수수깡처럼 지낸 한 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중심을 채우지도 못해 이제나 저제나 부러질까 노심초사해야만 했던.
그럼에도 드문드문 나를 둘러싼 세상을 섭취했고, 그중 마음에 맞아든 것들을 꼽아 진열해본다.

애플이 야심차게 내놓은 Freeform으로 회고 마인드맵 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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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그 푸르름에 질릴 정도로 생명력이 넘쳤던 발리 우붓에서 뚝딱 읽어내려간 책.
뭔가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시간이 마법처럼 흐르는 이야기를 읽으니
그 순간의 오감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꿈처럼 유연하게 뒤섞여 빚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해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이 시로 청혼을 하리라 결심했던 문학청년 시절로,
나 따위가 어쩔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속수무책함을 느끼던 꼬마 기자 시절로, 단숨에 되돌아가는 시간여행.

올해의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의 장르는 에세이가 아닐 것이나, 에세이에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충만하게 느꼈다.
살아가는 자세를 가다듬게끔 했던 뜨거운 재기.

올해의 비문학: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 바네사 우즈

다정하고자 발버둥치고 싶게 만든 이 책을 연초에 읽고도 마음먹은 만큼 다정하지 못한 채로 꾸역꾸역 살아남아 머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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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외국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Dan KWAN

엄마랑 같이 이 영화를 보고서 엄말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멀티버스를 활용한 가장 기발하고 다정한 스토리텔링.
그렇지 이게 영화지, 이게 영화의 매력이지 수없이 감탄하면서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압도되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

올해의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 영화 순위 갱신.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사랑과 성장 이야기를 수려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란듯 증명해냈다.
먹먹해서 한참 자리를 뜰 수 없었고 가슴속에선 박해일과 탕웨이의 눈빛이 파도소리와 함께 부서졌다가 멍울지기를 한참 반복했다.

올해의 한국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씨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염창희를 만나 꼬옥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해방된 너의 삶이 뭉근하고 아름답다고, 고생 참 많았다고.

 

올해의 외국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언제적 일본드라마야 하면서 패스하지 않은 나를 매우 칭찬하고 싶다.
일본식 첫사랑 콘텐츠 및 겨울 훗카이도계 콘텐츠의 큰 획을 그은 것도 모자라 아이슬란드 설경까지 등장한다.
내년 12월 삿포로 비행기표 끊었다.
테마곡인 퍼스트러브, 하츠코이는 물론 삽입된 모든 곡이 완벽해 귀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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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앨범: Teen Troubles, 검정치마

조휴일의 모든 휴일을 압류하고 계속 앨범만 내게 하면 좋으련만. 이 얼마나 기다린 끝에 받아본 정규 앨범인지!
90년대 미국으로 없던 추억여행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없는 추억 재생시키는거 참 잘해.

 

올해의 노래: 태풍의 눈, 페퍼톤스

가을 과로 시즌에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게 마음속 한가득 불어들어온 노래. 올해의 앨범을 Thousand Years로 해야 할지 정말 갈등했다.
장대비속에서 입을 벌리고 포효해야 할 것 같아서, 못당해낼 일은 없을 것 같아서 퇴근길에 찔끔 운적 있다.
“노여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마라, 으르렁대는 폭군 앞에 가슴을 펼쳐라, 견디기 힘이 들수록 끝이 다가왔단 것, 우린 마침내 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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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배우: 임시완

임시완 올해 작품을 본 것도 아니고 뒤늦게 영화 <불한당>이랑 드라마 <런온>보고 감탄했다.
불한당에서의 연기도 런온에서의 연기도, 얼굴에서 떠나지 않은 소년미도 새삼스럽게 마음에 쏙 들어다.

 

올해의 가수: 세븐틴

밥먹으며 고잉세븐틴 볼 땐 그냥 웃긴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노래 듣다가 스며들었다.
본업 잘하는게 정말 최고구나 싶고 직접 지은 노래+안무에 무엇보다 우리말로 된 서정적인 가사들이 위로를 줬다.
전에 모르던 세상이 하나 열린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다.

 

올해의 창작자: 정서경 작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까지, 원래부터 뛰어난 이야기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서도
올 한해 정말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창작자라고 생각한다.
애정을 듬뿍 부어 만든 캐릭터가 생명력을 입고 종횡무진하는 걸 지켜보는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올해의 단어: 쇄말

매우 작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비장하고 쓸쓸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한국말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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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이건희 컬렉션), 국립중앙박물관

이중 직접 고른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의 안목과 플렉스에 대해 고찰했다.
한 전시에서 보기 힘든 다채로운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올해의 공연: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LAS VEGAS, BTS

작년 엘에이 갔을땐 실감 나지 못해 만끽 못한 측면 있었고, 올해 서울 콘서트는 함성 못지르고 허벅지만 내리쳤다.
부산은 악몽과 뒤섞이는 바람에 최고로 꼽기 힘들겠다.
미친척 하고 라스베가스 다녀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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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외국도시: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페니다

오만가지 역경을 뚫고 이 뒤늦은 여름휴가를 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가슴 벅차는 일이다.
일기장 같은 친구와 오년 전 오키나와 추억 새록새록한 여름 여행 다시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오년만에 나홀로 다이빙 하러 들어간 누사페니다의 고운 고독을 잊지 못할것 같다.

올해의 국내도시: 부산

어버이날을 맞아 5월 남쪽의 태양이 얼마나 따가운지 체감하며 온식구가 해파랑길을 걸었다.
아빠 베낭에 꽂아드린 카네이션과 파랗게 일렁이던 윤슬이 눈에 선하다.
10월에는 군입대 전 방탄소년단의 마지막 완전체 콘서트가 있었다.
입덕하고 처음 보는 무대가 많아 행복했는데, 오직 행복만 해도 부족할 그날 회사에 큰 변고가 터져 집중 제대로 못한게 한스럽다.
감히 잊을 수 없는 올해의 도시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