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북촌

2월의 첫 주말,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 취재하러 가는 친구 환송 모임을 북촌 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가서 동네 구경할 생각에 두근두근 빨간 버스 타고 북촌 도착!

골목 모퉁이에 있던 작고 귀여운 서점. 지붕? 위 청동상이 너무 귀여웠다.

입춘이라 했는데,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일광의 빛깔은 제법 봄의 그것인 척 했는데
바람이 아주 매서웠다.
조금 거닐고 나니 금방 코끝이 빨개지고 얼굴이 얼얼했다.

원서동 보물창고 같은 큐레이션 서점 비화림!

꼭 가야지 하고 정해둔 곳은 이 동네 *•.¸♡최애♡¸.•* 장소중 한 곳인 큐레이션 서점 비화림.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더 남기진 못했는데 조그마한 공간이 선별된 책들로 곱게 꾸며져 있고 나름 북카페!여서 커피 한 잔 하며 머무를 수 있다.

내가 읽을 책이랑, 친구들 선물할 책 사서 본격적으로 산보 시작!

어떤 포토스튜디오의 외부 정원

 

미묘한 분위기의 귀여운 카페

성수, 한남만큼 바글바글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인파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 한참 북촌이 붐볐을 때보단 덜한 듯한 딱 생기 적당할 정도의 인파였다.

비화림 가서 선물 사는 것 외에는 딱히 마음 정해 둔 게 없어 골목 구석구석을 야무지게 돌아다녔다.

햇빛이 제법 따뜻하게 내려앉은 척 하는 한옥 골목

그러다가 ‘북촌마을서재’란 공간이 맵에서 눈에 띄길래 거기 가서 죽치고 책이나 읽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운영주체 변경에 따른 임시 운영중단 기간이라니..
망연자실.

북촌 한옥지원센터 입구

그 옆에 북촌 한옥지원센터가 붙어있길래 좀 쉴겸 들어가보았다.
그날이 정확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열리는 입춘이라는 걸, 한옥지원센터 대문 앞에 붙은 입춘대길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한옥지원센터 내부.

인기척 없이 열려 있었는데 들어가도 되는지, 들어가서 막 앉아있고 그래도 되는지 애매했다.
탐이 나는 휴식 장소였는데 사진 찍고 두리번 거리다가 금방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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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장면 중 하나

퇴각하는 길 골목에서 한옥도 양옥도 아닌 느낌에, 용도도 불분명한 어떤 문짝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 장면을 보았다.
사선으로 그어진 오후의 햇볕 덕분에 그 문이 마치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다른 세상으로 난 마법의 문처럼 보였다.
문 열어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근질근질했는데, 주거침입으로 입건될까봐 꾹 참았다.

다음에는 진짜 꼭 가야지, 까페 델 꼬또네

조용한 카페 가서 책 읽고 싶어서 마저 떠돌았는데 괜찮은 카페마다 인산인해라 자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
가보고 싶어서 맵에 저장해뒀던 에스프레소바는 사람이 없는 듯 했지만, 서서 책 읽기도 애매하고 멋쩍어서 기웃거리다 말았다.

결국 정처 없이 헤매다가 고깃집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간신히 난 자리 비집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저무는 해가 통창으로 내리꽂혀 눈이 부셨다.
얼굴에 내리쬐는 해를 피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 보니 해가 넘어갔고, 책장도 술술 넘어가 한권을 뚝딱 다 읽었다.

담넘어 궁

‘구시가지(Old Town)’로 불리는 곳에선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엘 가도 마찬가지다.
골목이나 건물, 때로는 남루해보이는 간판으로 삶이란 게 그곳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흔적들이 우러나는데 그게 찡하도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가 뒤엉켜 만든 풍경 위에서 간을 무릅쓰고 뭔가를 남긴 뭇사람들의 생명력이 반짝거린다.

점점 더 팽창하는 도시 서울에서 구시가지, 올드타운이라 불릴 만한 곳이 제법 여럿이지만 역시 북촌과 서촌만한 곳이 없다.
한옥의 처마와 통유리 마천루가 한눈에 보이는 비현실적인 동네.

회사가 판교만 아니면 이동네 한번 꼭 살아보는건데.
당장 올가을 계약갱신 땐 엄두가 안 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한번 살아보고 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