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감 사전>, 어문학적 감수성 연단

우리말 어감 사전

안상순 / 유유출판사

 

 

언어의 의미란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해도 끝내 궁극을 드러내지 않는 불가지의 영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ㅇ 감동: 사물/현상의 훌륭함이나 아름다움, 진실함 등에 가슴이 뭉클하거나 찡함을 느끼는 상태.
ㅇ 감격: 간절히 바랐거나, 바랐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생각지 않았던 큰 도움을 받거나 하여 기쁨이나 고마움이 뭉클하게 솟구쳐 일어나는 것.
ㅇ 감명: 어떤 일이나 이야기 등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훌륭하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감정이 풍부하다'는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으며 감정을 숨김없이 잘 드러낸다는 뜻이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주위 사물을 섬세하게 느끼고 잘 표현할 줄 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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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술적 감성'은 성립할 수 있어도 '예술적 감정'은 성립될 수 없다.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감정이라면, 창조적으로 발휘되거나 섬세한 정신으로 발현되는 것은 감성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한 송이 꽃에서 우주의 비밀을 읽을 수 있지만, '시인의 감정'으로는 그 같은 창조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없다.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면, 진실은 '참되고 바른것,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실이 실제와의 부합에 초점이 있다면, 진실은 정직성이나 올바름에 초점이 있다.

 

세상과 세계 모두 크고 넓은 곳이지만, 범위나 영역의 면에서 세상은 막연하고 주관적인 성질을 띠는 반면, 세계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성질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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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수많은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나 그 사회의 속성을 가리킬 수 있으나 세계는 그럴 수 없다.

 

실수가 일의 과정에 초점이 있다면 실패는 일의 결과에 초점이 있다.

 

행복이 마음먹기에 따라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라면, 복은 생래적으로 가지는 것이거나 초월적 존재나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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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로 벌어먹는 삶을 시작한지 어언 9년차.

땅에 발 딛고 산다는 생각이 종종 흐려지고, 말글의 홍수에 환멸을 느낀다.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실체적이고 물리적인 일, 손에 잡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서 충만한 기쁨을 느끼는 건,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의 미묘함이 주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짜릿한 순간에 더 흠뻑 젖고싶다는 열망 때문에 경제적이지 못한 결벽으로 표현을 벼린다.

평생에 걸쳐도 부족한 어문학적 감수성의 연단을 나는 퍽 소중하게 여기는 부류의 사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교해서 풍성한 말과 글의 세계를 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국립국어원보다도 신중하고 깊이 접근하는 저자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표현이 빼곡하다.

담백해서 황홀하다고 하면 지나칠까. 

단순히 두 말의 뜻을 뜯어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피부에 와닿는 다양한 용례를 제시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두 말의 쓰임이 탁월한 유수의 작품들을 끌어오기도 한다.

단어에 대한 천착에서 우러난 성찰을 무심한듯 정갈하게 툭툭 던지는 특유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언어가 사람과 시간을 지나 느리지만 꾸준하게 변하는 생물인 덕분에

단 두 어절 안에 깃든 역사까지 엿볼 수 있을 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목차를 톺아볼 땐 가치관을 반추하게 됐다.

나는 세계보다는 세상을, 사실보다는 진실을, 동감보다는 공감을 동경한다. 

실수도 실패도 없는 발전을 원한다.

다만, 실수와 실패 중 어느 하나를 반드시 맞닥뜨려야 한다면 더 견딜 만한 쪽은 무엇일지 모르겠다. 

 

활자에 미쳐서 자라던 중학교 때 국어사전을 ㅂ까지 읽고 그만뒀다. 

그때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어의 힘에 허기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